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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38]박용구 박사
포천발전 이끄는 숨은 주역 박용구 박사
2004년 04월 09일 [포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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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구 박사

 

“포천발전 이루기 위해 지역에 상관없는 能力과 성실성 겸비한 인재 뽑아야한다”

 

포천군 신북면에서 태어난 박용구 박사는 고향 포천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박용구 박사는 한양대 행정대학원에서 ‘한국의 토지정책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대전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간의 생산적 관계 정립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때 박용구 박사의 나이가 벌써 47세였다. 눈물 겨운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늦깎이 박사로서 지난 2001년에는 박사논문을 책으로 펴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농업에 종사하던 양친 슬하의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난 박 박사는 생활은 넉넉치 않았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라는 좌우명을 정해 놓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왔다.
기무사령부에서 7급 특채로 시작한 군생활. 31년째 접어들고 있는 공직생활에
지칠때도 됐지만 과거보다 더욱 더 고향 포천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발벗고 나서겠다고 말하는박 박사.
박용구 박사의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인간 박용구
박용구(49) 박사는 포천군 신북면에서 태어나 신북초등학교, 포천중학교, 포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기무사령부에서 28년간 근무하고 있는 ‘국내정보통’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군에 복무하면서도 못다 이룬 학업에 뜻을 품고 한양대 행정대학원에서 ‘한국의 토지정책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대전대 대학원에서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간의 생산적 관계정립에 관한 연구’로 47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늦깎이 박사이기도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박 박사의 업적은 국내 주요 일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농업에 종사하던 양친(박운근·최수옥)슬하에 4남 1녀중 3남으로 태어난 박 박사의 생활은 넉넉치 못했다.
그러나 부모형제간에 화목과 우애가 있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박 박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라는 좌우명을 정하고 항상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생활해 왔다.
포천에서 초·중·고교를 마치고 이후 군 생활을 하면서 남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인내력으로 못다 이룬 박사의 꿈을 이뤄낸 노력파다.
박 박사는 고교시절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실 꿈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생각해 낸 것이 체육특기생이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해 늘 근검절약하며 살았습니다.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었지만 역시 학비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럭비를 시작했습니다. 운동으로나마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우연히 찾아 온 기회가 바로 군대였다. 당시 친구 2명의 제안으로 셋이서 군 시험에 응시했다. 그러나 정작 합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용구 박사 혼자 뿐이었다.
이후로 군에 입대해 솔선수범하는 모범적인 군생활로 상관은 물론 후임병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무사령부에 7급 특채로 선발되어 28년간 근무하면서 현재는 부이사관으로 ‘대한민국 안보역군’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학문에 대한 꿈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입시학원에서 1년간 야간반 입시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주경야독이 따로 없었습니다. 몸은 고달펐지만 마음만은 미뤄두었던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는 마음에 항상 뿌듯했습니다”
박 박사는 2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게 명지전문대학 영어과에 진학하게 된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양대 행정대학원(부동산 정책)을 졸업하고 대전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꿈에도 그리던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까지에는 박용구 박사만의 지칠줄 모르는 집념과 끈기의 댓가였다.
학업을 하는 동안 박 박사는 근속휴가와 연가 등을 모두 반납했다. 박 박사의 성실한 근무태도에 반한 직장에서도 박 박사가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을 학업시간으로 배려해줬다.
“매주 금요일이면 대전에서 하루 종일 학업에 매달렸습니다. 직장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근속휴가는 물론 연가 등을 반납했고 평일에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갑절 이상으로 노력했습니다. 저의 노력보다도 주위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겸손해 했다.

 

▲박용구의 가족 이야기
박용구 박사의 양친인 박운근·최수옥 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살림살이가 넉넉치는 못했지만 자식들에게 가정의 화목과 우애를 몸소 보여주며 가르쳤던 분들이다.
“아버님은 7년전에, 어머님은 4개월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이 막막했습니다. 현재의 저를 있게 한 분들이었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좀 더 잘하지 못한 제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속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외쳐보고 합니다”
박용구 박사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다. 딸 지나(22) 양은 현재 일본 도교 모도(Tkoyo Mode)대학교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있고 아들 규창(21) 군도 동경국제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리고 박용구 박사의 영원한 동반자인 백운복 여사는 현재 KT에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박 박사는 학업을 하는 동안 등록금을 내 본 적이 없다. 모두 장학금으로 학교생활을 마쳤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생활비를 빼 놓고는 학비를 주지 않는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는 학비를 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식들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
신북면에서 태어난 박 박사는 어렸을 때 기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자라 얘기부터 꺼낸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천에서 멱감고 놀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또 솥뚜껑만한 자리가 천변 모래사장에 덕지덕지 널려 있었습니다. 밤에 다른 도구 없이 횃불 하나만 들고 나가도 자라를 원하는 만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누워서 떡 먹기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포천의 하천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심혈을 기울여 치수사업에 신경써야 할 때입니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수도 있는 것입니다”

 

▲포천 발전을 위한 제언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간의 생산적 관계정립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아서인지 박용구 박사는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의 자질향상을 첫번째로 꼽았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자치단체장은 과거처럼 월급이나 받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지방경영의 책임자로서 넓은 식견과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방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의회 본연의 역할인 견제와 감시, 비판을 위해서는 지방의원의 자질향상이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방의원의 유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성과 행정경험을 갖춘 사람이 선출되어야 공무원에 끌려다니지 않고 소신있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천군민에 대한 당부사항
박용구 박사는 포천이 발전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포천군민의 의식전환이라고 강조한다.
“포천은 지리적,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타 지역 출신 인사에 대한 배타성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지역에 상관없이 포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으로 선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천군민들의 의식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내 후손을 위해 또 고향 포천을 위해서는 포천군민 스스로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합니다”
박용구 박사는 포천의 배타성이 결국엔 포천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요인이라고 꼬집었다.
“포천의 발전은 일부 인사만의 일은 아닙니다. 포천군민 전체가 합심할 때 비로소 포천의 발전이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노력하는 자에게 그만큼의 성과물이 생기는 것입니다. 포천군민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낼 때 가능한 일입니다. 포천군민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 하나의 여론을 만들 때 중앙정부에서도 깊이 인식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주요경력
▷신북초등학교 졸업(1966) ▷포천중학교 졸업(1969) ▷포천고등학교 졸업(1972) ▷국군기무사 7급 입사(1979) ▷명지전문대학 영어과 졸업(1984)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졸업(1989) ▷한양대 행정대학원 부동산 정책 졸업(1995) ▷대전대 행정대학원 공공행정 졸업(2001)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중앙위원(2001) ▷국군기무사 3급 진급(2002) ▷재경포천군민회 감사 ▷포천중고교 동문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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